김대건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였던 ‘골배마실’이라는 지명은 배마실이라는
동네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배마실(현 양지성당 소재지)은 옛날부터 첩첩산중인데다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서 뱀마을,
즉 ‘배마실’이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김대건의 가족이 거주하던 집은 배마실까지 이어지는 골짜기 안에 있어
‘골배마실’이라고 붙여졌다.
소년 김대건이 세례성사를 받게 된 때는 한국에 프랑스 선교사로서 처음 입국한
나 모방 신부로부터 15세 되던 해인 1836년 은이 공소에서였다.
그러나 소년 김대건은 세례는 받지 않았어도 곧바로 신학생 후보로
선발이 된 사실로 미루어 보아
가정에서 이미 교리 공부와 기도 생활은 착실히 배워 실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816년 이후 시작된 평신도 지도자들의 꾸준한
성직자 영입 운동이(매년 중국교회를 방문했던 시기)
무르익어 결실을 앞두고 있던 때였기에 소년 김대건은 성직자에게 직접 세례 성사를 받고자 하는
뜻을 갖고 기다렸음이 확실하다.
이처럼 골배마실 성지는 김대건의 소년 시절의 향취가 남아 있는 곳이요,
성소의 꿈을 키우던 장소이다.
조선 땅에 이제 곧 오실 신부님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교리를 익히고,
조선 교회의 미래를 위해 한 몸을 바치고자 하는 포부를 가슴에 담고 살았던 장소이고,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준비하면서 설레는 마음을 간직하고 생활했던 곳이다.
골배마실은 옛날부터 양지 교우(신자)들 사이에 김대건 신부의 가족들이 살던 집터로
구전되어 왔었다.
하지만 이곳을 발굴하게 된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골배마실 성지는
1961년 양지 본당 5대 주임이었던 정원진 루가 신부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돌절구와 갖가지 생활 도구,
즉 맷돌, 우물터, 구들장 등을 발견하면서 성지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7년에는 40년 가까이 옛 모습 그대로 있던 성지를 새롭게 단장하게 되었는데,
새로이 청동으로 제작된 2M짜리 성상을 모셔 7월 5일 대축일을 맞아 축성하였고
처음 골배마실 성지에 모셔졌던 성 김대건 신부 성상은 양지성당 정원에 모셔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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