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즐거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 분당요한성당의 피에타

삼스카라 2009. 8. 30. 11:43



<분당요한성당>에 있는 이 피에타상은

동일한재질의 대리석,동일한크기,동일한 색을 복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죽은 예수와 이를 애통해하는 성모’라는 주제의 ‘피에타(pieta)’는

중세 이후 기독교 문화의 예술가들에게는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었다.

장인들의 손을 통해 이 주제는 때로는 극도의 슬픔으로, 혹은 슬픔을 초극한 신성의 상징으로,

때로는 세족적인 우화로 또 때로는 경건한 신앙의 대상으로 새롭게 번안되어 왔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주도한 불세출의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였던

미켈란젤로(Micheloangelo Buonarroti, 1475~1564)에게

역시 ‘피에타’는 끊임없이 되돌아가게 되는 일종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거의 일 세기에 달하는 생애를 통해 여러 점의 ‘피에타’를 제작했으며 그에게 최초로 로마에서의

세속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던 작품이나 파란과 곡절로 점철된 삶을 마감하기 며칠 전까지도 정과 끌을 놓지 못하고

매달렸던 최후의 작품 역시 ‘피에타’였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미켈란젤로는 어지러운 시대를 살며 감내해야만 했던 한 천재의 인간적인 고독과 회한 그리고 영광의 상념들을

이 주제를 빌어 호소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초벌작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조각을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멈춰진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보는 이에게 거칠게 남아있는 끌 자국 하나 하나에서 거장의 숨결이 느껴질 듯한 특별한 감흥을 준다.

여기서 미켈란젤로는 성모의 무릎 위에 누워있는 예수라는 전통적인 도상을 완전히 무시한 채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분노할 듯한 자세의 예수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를 말리고 달래는 듯한 성모를 수직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거침없이 파 들어가는 그의 끌과 망치는 이미 이같은 자세가 과연 가능한지 해부학적으로는 정확한지

또는 성서 중 어느 대목의 모습인지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은 그다지 고려하고 있지 않는 듯 하다.

다만 이 모자는 숙명처럼 짊어지게 될 나머지 돌조각들의 무게를 떨쳐버리기 위해서 힘겹게 뒤척이고 있을 뿐이며,

굳이 그 종교적인 주제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그 모습은 자체로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류의 모습이자 천재이기 이전에

한 인간일 수밖에 없었던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신의 손길인 듯 완벽하게 마무리된 청년 미켈란젤로의 1499년작 [피에타]에서

성스럽게 재현된 종교적 슬픔의 정화를 체험할 수 있다면,

미완성으로 남겨진 [론다니니의 피에타]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모순된 운명을 격렬하게 직시하는 늙은 천재가 건네는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받게된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1475.3.6 ~ 1564.2.18)

이탈리아의 화가·조각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산치오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힌다.

인체해부학에 대한지식과 뛰어난 소묘 솜씨로 강렬하고 역동적인 인물을 그려냈으며,

남성적이고 박력있는 형상의 걸작을 여럿 남겼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바티칸의 교황에 봉사하며 조각과 건축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피에타], [다비드],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정화 중 [최후의 심판], [천지장조] 등이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