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 서울 출생
1960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1961 양정고등학교 교사(~1967)
1967 보성고등학교 교사(~1982)
1967 백영 사우회 창립
1968 국전사진부 특선 3회, 금상 1회, 입선 2회
1970 엑스포 '70 한국관 사진담당
1972 국전추천작가
197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강사(∼1975)
1975 엑스포 '75 한국관 미래관 사진출품 30점
1980 국전초대작가
1881 신구전문대 사진학과교수(∼2004)
1983 KBS이산가족찾기 이벤트 사진촬영 담당 20,000매
1986 '86 아시안게임 공식기록 사진가
1988 '88 서울올림픽 공식기록 사진가
1988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강사(∼현재)
1989 사진예술지 편집주간(∼현재)
1993 엑스포 '93 멀티비젼 총감독
1993 한국 민족사진가협의회 의장(∼96)
1994 한국사진학회 회장(∼95)
1995 삼성카메라 클럽 회장
2002 신구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2002 성균관대학교 예술학부 강사
2006 경원대학교 디자인 예술대학원 강사
저서
1982 작품집[아메리카] 도서출판 시각
1984 작품집[NUDE] 도서출판 시각
1985 [현대사진의 조류] 신라출판사
1986 [풍경사진] 신라출판사
1987 [사진예술론] 해뜸출판사
1988 [현대일본사진가] 해뜸출판사
1991 [홍순태 사진전집] 사진과평론사
1993 [사진입문] 대원출판사
1984 [현대사진의 전개와 비평]신구문화사, [홍순태회고집 1960-1994] 홍진프로세스
1998 [풍경사진] 대원출판사
2000 [홍순태2000] 홍진프로세스, [사진 이론을 버려라] 대원출판사
2007 [낙동강] 눈빛출판사
개인전
1978 1회 '투시' 미도파 화랑
'
'
'
2009 35회 '우울한 겨울' CBL 갤러리 초대전
<서울 강동구 상1동 작업실>
이 곳 작업실은 빌라형 주택으로 아래층은 주거용으로
윗 층은 연구실및 작업실로 꾸며져 있다
세계 100여곳을 사진을 위한 여행을 하면서 모은
희귀한 수공예품들이 함께하며
지금껏 손 때 묻은 카메라와 렌즈가 분위기를 압도했다
또한 사진관련 서적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 어려웠으며
무엇보다도 보관된 수만장의 필름을 디지털화시킨 작업의 모습에 놀라웠다
세계 걸작선 및 사진가들의 사진을 비교 분석하여
영상화된 내용을 배경음악과 함께 작업하고
그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게해주시는 자상함도 엿볼 수 있었다
현재 몸이 굳어가는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왕성한 창작활동과 후진양성에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에
진정한 인생의 행로를 느낄 수 있어 행복한 날이었다
<서울 강동구 상1동 작업실>
<서울 강동구 상1동 작업실>
<서울 강동구 상1동 작업실>
<서울 강동구 상1동 작업실>
<서울 강동구 상1동 작업실>
<서울 강동구 상1동 작업실>
<서울 강동구 상1동 작업실>
<서울 강동구 상1동 작업실>
사진가 홍순태를 말한다. |
사진가 홍순태, 지금 우리 사진계에서 그만큼 온갖 모든 최상급의 형용사를 다 갖다 붙여도 오히려 모자란 이가 또 있을까. 그는 사진집을 비롯한 사진에 관한 서적출판에서도 단연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가장 많은 출판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제까지 그가 펴낸 사진저서가 자그마치 모두 아홉 권, 남들은 평생 걸려서 사진집 한두 권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판에 그는 이렇게도 엄청난 수량의 저서를 출판했다. 그런데 그의 이같이 비상한 정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아마도 그만큼 사진계에서 많은 감투 그리고 다양한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친 사진가도 드물 것이다. 만약 이력서에 사진분야의 경력을 다 쓴다면 실히 너댓 장도 오히려 모자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최고로 가장 많은 개인전을 가진 사진가, 최고로 많은 사진책을 펴낸 사진가인 동시에 우리 사단에서 가장 많은 감투를 쓴 사진계의 실무적인 대표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감히 그 누구도 견줘 볼 수 없는 가히 초인적(超人的)인 정력가라 아니할 수 없다. 그의 초인적인 면은 어디 비단 이것들뿐인가. 일단 사진에 관계되는 한 그 무엇이든 호기심과 관심 또한 남달리 대단해서 사진의 물리적 화학적 메커니즘(mechanism)을 비롯해서 예술적인 이론까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두루 의욕이 왕성하다. 아마 해외의 사진에 관한 최신정보에 대해서도 그만큼 민감하고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이도 드물 것이다. 그는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진예술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서도 향상 남보다 앞서서 정보를 입수한다. 그래서 필름이나 인화지 카메라 등, 그밖에 모든 사진재료들이 대부분 제일 먼저 그의 손을 거쳐가고 또한 최신의 예술적인 해외의 동향도 그에 의해 거의 우리 사단에 소개되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이같은 항상 샘처럼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호기심은 촬영무대를 전세계로까지 확대케 하 여 국내에서 이른바 전문적인 여행가들도 못 당할 만큼 지구상 대부분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그의 이같이 남달리 왕성한 호기심으로 하여 아마 우리 사진계에서 개인적으로도 가장 많은 사진의 작업량, 가장 많은 사진정보, 가장 많은 사진원고를 그는 축적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그는 사진에 관한 한 모든 것에 관심이 뻗쳐있고 모든 것에 남다른 의욕이 이상은 사진에 종사하는 사진인 홍순태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제 그의 사진세계에 눈을 돌리기로 하자. 그의 사진세계는 한마디로 단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복합적이고 다종다양해서 일정한 관점(觀點)으로는 간단하게 그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이는 보다시피 남다른 의욕적인 관심과 왕성한 호기심으로 인해 사진의 주제나 작업방식이 다종다양하고 또한 사진가로서의 변신이 능수능란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심스럽게 사진의 주제(主題)별로 지금까지 걸어온 작업과정을 큰 테두리로 정리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이 사진세계의 윤곽이 잡힌다. 1. 초기의 공모전 출품사진들(1960-1970) 이상의 주제별 분류에서 발견되는 것은 우선 그가 시종일관 사진의 기계적 기록성을 신봉하는 순수사진(Straight photo)의 입장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디까지나 사진만이 갖는 사진의 고유성을 끝까지 고수하는 이른바 철저한 정통파 사진가이다. 그리고 주제별로 촬영연대를 대조해보면 1980년대를 경계로 그 이전까지는 촬영무대가 국내이고 그 이후부터는 대체적으로 국외(國外)가 주무대로 되어있다. 이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세분해 보면 국내무대도 대개 초기에는 농촌지역이 많고 후반에 갈수록 대상에 대한 관심이 도시로 차츰 이동한다. 그리고 외국무대도 초기에는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 전세계로 확산되어가다가 후기에 갈수록 우리 동양문화권으로 집중 축소된다. 이것은 일단 주목할 현상으로 자신이 서있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처음에는 멀리 떨어진 데로 사진적인 관심의 향방이 원심적(遠心的)으로 기울었다가 마침내는 자아(自我)를 향해 구심적(求心的)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사진가가 사진을 찍어나가는 과정에서 사진을 통한 자아의식의 자각과 성숙에서 말미암은 자연스런 결과라 할 수 있다. 국내거나 국외거나 그의 사진에 일관되게 흐르고있는 공통분모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활감정의 파악, 즉 '삶이 진실'이다. 그는 항상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 배어있는 인간의 숨결과 체취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 한가지 눈에 뜨이는 것이 있어 흥미롭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하나같이 사진의 전면에 사람을 크게 부각시킨 인물위주의 사진보다는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공간적인 상황을 강조한 분위기 위주의 사진이 대부분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의 사진은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대면(對面)보다는 그가 살고 있는 분위기 속에 자신의 심리적인 반응을 했을 때에 성공률이 더 높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밖에 또 한가지는 단순하고도 엄격하게 화면이 구성된 세정(世情)의 풍경들이 다른 사진들에 비해 거의 하나같이 돋보인다.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그의 타고난 성정(性情)과 기질(氣質)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리라. 그의 단순 솔직한 직선적인 성격, 그리고 매사를 깔끔하게 다루어야 직성이 풀리는 정리벽(整理癖)이 그의 사진 속에 그대로 투사된 것이라 하겠다. 끝으로, 앞서 그는 사진적 변신이 능수능란하다 했는데 홍순태의 사진세계가 한국사진사의 시대적 진행 과정 속에서 어떻게 창의적 변신(變身)을 이룩해 나아갔는가를 살펴보자, 그는 1960년대에 사단에 등단했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30년이 넘게 그는 줄곧 사진계의 제일선에 서서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60년대가 우리 사진사에서 시대적으로 어떤 시기였는가? 60년대는 사단이 사회 속에 제도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시기다. 이전까지 인맥이나 지연을 따라 특정인물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던 군소집단들이 예총산하(藝總傘下)의 전국을 망라한 통일된 하나의 공식단체로 새로운 출범을 하였다. 이로써 사회 속에 사단이 뿌리를 내리고 아울러 63년 동아일보사의 동아사진콘테스트의 창설과 함께 64년 사진이 국전(國展)에 참여하면서 명실공히 공적(公的)인 사단 등용문이 비로소 생겼다. 그리하여 이 두 공모전이 국전미술부문이 그 당시 미술계에 절대적 권위로 군림한 것처럼 이 시기에 사진활동의 전체적인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홍순태는 바로 이 두 등용문을 정식으로 모두다 통과하여 그 당시로서는 드물게 화려하게 사진계에 입문하였다. 두 공모전 중 한가지만 통과해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영광스런 관문을 그는 둘 다 한꺼번에 통과하였으니, 이는 비유컨대 고등고시 양과(兩科)합격의 영광에 비길 수 있는 것이라 할까. 이 두 관문의 동시 합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그 숫자가 모두다 통틀어서 열 손가락을 꼽을 수 없는 데서 잘 증명된다. 70년대는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서 사진계를 휩쓴 리얼리즘 사진과 맞서 영상사진(映像寫眞)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시기이다. 이제는 대상(對象)에 대해 사진이 어떻게 반영(反映)해야 하는가 하는 사실적(事實的)인 사진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사진가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해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가 하는 심상적(心像的)인 사진의 문제로 사진가들의 관심이 뒤바뀌게 되었다. 홍순태도 바로 이 사진의 새로운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공모전사진에서 새로운 영상사진으로 앞장서 사진적인 변신을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현대사진연구회를 조직해서 젊은이들을 통한 영상사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며 공적으로는 사진동우회(寫眞東友會)를 주도하는 주체로서 동아일보 사진공모전을 제도적으로 개선해서 영상사진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이로써 그는 60년대 공모전시대의 대표적인 신인으로 출발하여 70년대 새롭게 일어난 영상사진운동을 선도하는 중견지도자로 일대 변신하였다.1980년대는 우리 사진계가 또다시 새로운 시대적 전환을 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즈음하여 세계적으로 막 일기 시작한 새로운 경향은 크게 둘로 나누어 이른바 '만드는 사진'(Constructed photo)과 새로운 컬러사진 즉 New Color의 등장이다. 이중에서 그의 또 다른 시대적 변신은 New Color와 맥(脈)이 닿는다. New color 사진은 컬러사진에 대한 종래의 인식을 타파한 새로운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1839년 사진이 처음 발명된 이래로 지금까지 사진하면 그것은 곧 흑백사진이고 컬러사진은 어디까지나 방계적(傍系的)인 특수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에서 색에 대한 인식이 흑백이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것이며 Color는 특수하고 고답적이라서 예외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New Color 사진의 새로운 입장은 이와 정반대이다. 흑백사진이 방계적인 특수한 것이고 Color사진이야말로 가장 정상적이고 일상적으로 리얼(real)한 색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이나 유럽에 이러한 새로운 인식과 자각에 크게 영향을 받은 사진분야의 하나가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이제까지 머리에 박힌 고정관념으로 컬러사진은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순수예술의 특수한 표현에만 국한된 것이고 삶이 현장을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New Color의 등장으로 이러한 허구가 깨어지고 Color야말로 흑백보다 오히려 일상적이고 사실적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사진에 가장 적합하다는 인식이 보도사진가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홍순태의 영상사진에 이어 또 한번의 변신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80년대로 넘어서면서 그는 사진의 무대를 국내에서 세계로 넓혀서 컬러사진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착수하였다. 그로부터 이제까지 10여 년 간 그는 계속해서 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사진작업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오랫동안 일관되고 체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개인전 20회라는 엄청난 기록 가운데 약 절반이 이 시기의 작업이다. 이로 미루어 이 작업에 몰두하는 그의 열의와 밀도 그리고 관심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과연 이 작업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리고 이 작업에 이어 그는 또 어떻게 또 다른 변신을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는 확신한다. 그는 또 다른 변신을 분명히 할 것임을,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무릇 가장 원기왕성한 활화산(活火山)은 으레 또 다른 새로운 폭발을 반드시 하기 마련이니까. |
<우울한 겨울>
<우울한 겨울>
<34번째 개인전>
<영등포 양평>
<장 가는 길>
<청계천>
'전시회 및 인물 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蔣介石(장개석) 장제스 (0) | 2009.09.14 |
---|---|
Ludwig Wittgenstein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20C 최고의 철학자) (2) | 2009.09.04 |
보도사진 조작설/매그넘의 설립자 로버트카파(Robert Capa) /어느 스페인 병사의 죽음 (3) | 2009.08.20 |
데니 라이언 (Lyon, Danny) - 퍼스널 다큐사진작가(미국태생 1942년) (0) | 2009.08.14 |
니콜라스 닉슨(Nixon, Nicolas)-세계적인 사진작가 (0) | 2009.08.13 |